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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위탕林语堂 『생활의 발견生活的艺术』
- 미국의 삼대 악습
“괜찮다고 여기면, 모든 것이 괜찮아진다.”라는 중국사람 특유의 심오한 관념은 미국인들의 관념과 특이한 대조를 이룬다. 정신이 육체의 노예가 될 정도로 인생을 번거롭게 살아야만 하는 걸까? 유한철학(有閑哲學)의 숭고한 정신은 이러한 관념을 배척한다. 나는 한 엔지니어링 회사의 광고에서 “거의 완벽한 것으로는 아직 부족하다.”라는 큰 표제를 봤었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광고 중에서 가장 특별했던 광고였다. 완벽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이 지나칠 정도였다. 미국 사람들의 문제점은 이미 완벽에 가까운 것을 기어코 더욱 완벽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그에 반해 중국인들은 거의 완벽하다면 충분히 좋다고 여긴다.
능률을 추구하고, 시간을 엄수하며, 사업의 성공을 바라는 것은 미국의 삼대 악습인 듯하다. 미국인들이 불행하고 신경질적인 이유는 바로 이 세 가지가 훼방을 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적한 삶을 누릴 천부적 권리를 빼앗기고, 한가하고, 아름다우며, 귀여운 오후들을 그것들 때문에 놓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첫 번째로 믿어야 할 것은 세상에는 재난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또 ‘일을 미뤄두고 하지 않는 것’이 ‘일을 완벽하게 하는 것’보다 더욱 고상하다는 것이다.
대체로 편지를 받고 바로 답장을 쓰면 좋은 것 반 나쁜 것 반인 결과가 나오기 마련이다. 답장을 쓰지 않으면 좋은 약속을 몇 번 놓칠지는 몰라도, 불쾌하게 헤어지는 약속은 피할 수 있다. 만약 석 달 동안 서랍 속에 박아둔 편지들을 열어서 보면 대다수 편지는 답장을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석 달 후에 다시 보면 전부 답장을 쓸 필요가 없고, 답장을 쓰는 건 그저 시간 낭비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편지를 쓰는 행위는 편지를 쓰는 사람을 상품을 판매하는 일류 브로커로 만들고, 대학교수를 유능한 비즈니스 매니저로 바꿔놓을 수 있기에 확실히 죄악이 될 수 있다고 하겠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우체국을 수시로 드나드는 미국인들을 무시했던 소로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능률을 추구하면 일을 마무리 지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아주 훌륭하게 끝낼 수 있으며, 이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 나는 항상 중국 수도꼭지보다는 미국산 수도꼭지를 애용해왔다. 미국에서 만든 수도꼭지는 물이 새지 않아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반드시 유용해야 하고, 반드시 능률적이어야 하며, 반드시 관료가 되어야 하고, 반드시 큰 권력을 차지해야 한다”는 낡은 관념에 대해서는, 사전에 입을 맞추지 않고도 “세상에는 수많은 바보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 바보들은 유용한 사람이 되고자 하고, 괴로움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온종일 일하고, 큰 권력을 차지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알아서 모든 사업을 잘 처리할 것이다.” 라고 대답할 것이다. 중요한 건 한가롭게 지내는 사람이 똑똑한 것인지, 아니면 일에 바둥바둥 거리는 사람이 똑똑한 것인지 하는 문제이다.
우리가 능률 추구에 찬성하지 않는 이유는 능률 추구가 너무나 수고로운 일이라, 일을 흠 하나 없이 완벽하게 해내기 위해서는 여유를 누리는 즐거움도 잃어버리고, 정신마저도 함께 상처받기 때문이다.
미국의 한 잡지 편집자는 오탈자를 너무 철저하게 교정하려던 나머지 백발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중국 편집자는 훨씬 똑똑하다. 독자들이 잡지에서 실수를 발견할 때 얻는 즐거움을 더해주고, 독자들의 세심한 관찰력을 높여주려고 일부러 고쳐지지 않은 오탈자를 남겨둔다. 이뿐만이 아니다. 중국 잡지들은 다 정기적으로 소설 한 편씩을 연재하는데, 몇 번 연재하고 나서는 갑자기 실종되고 독자와 편집자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만다. 아마 미국에서 이랬다가는 그 편집자에게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 편집자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말 그대로 아무 상관 없기 때문이다.
미국 엔지니어가 다리를 건설할 때에는 계산이 정확하여 양 끝의 장부점이 서로 1촌(寸, 3.33cm)의 10분의 1도 차이가 나지 않는다. 만약 두 중국 노동자가 산 양쪽에서 각각 터널을 뚫기 시작한다면, 두 개의 입구와 두 개의 출구가 생길 것이다. 중국인들은 터널이 뚫리기만 한다면 아무 상관 없다고 생각한다. 터널이 두 개면 오히려 복선 철로도 깔 수 있지 않은가. 시간에 쫓기는 것이 아니라면 터널이 두 개든 한 개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어쨌든 터널은 터널이고, 뚫는 것도 뚫었다고 볼 수 있으며, 공사도 마무리되었다고 할 수 있으니 기차가 정상적으로 다닐 수만 있다면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중국 사람들은 극도로 시간을 준수하는 사람들이지만, 대신 일 할 시간을 충분히 주어야 한다. 정해진 시간이 적당히 길기만 하다면 그들은 항상 일을 규정된 시간 내에 완수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산업 생활의 속도 아래에서 이런 위대한 ‘여유로운 삶’은 누릴 방법이 없다. 게다가 지금 시계로 시간을 재는 것은 사람들의 시간관념을 바꾸어 놓아 똑똑한 우리 인류가 시계 그 자체가 되어 버리는 상황을 초래한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자연스레 중국으로 찾아들 것이다. 예컨대 2만 명의 근로자들이 있는 공장에서 근로자들 모두 각자 멋대로 시간을 정해 출근한다면, 이는 매우 끔찍한 일이 될 것이다. 그래서 정해진 시간에 따라 출근하는 규칙이 만들어지게 되었고, 삶이 이토록 힘들고 빠듯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
어느 장소에 오후 다섯 시까지 딱 맞추어 도착해야 한다면, 다섯 시 이전의 모든 시간을 이 일의 준비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거의 모든 성인이 세 시에는 이 일, 다섯 시에는 또 다른 일, 여섯 시 삼십 분에는 셔츠 갈아입기, 여섯 시 오십 분에는 차 타기, 일곱 시에 호텔에 도착하기 등 초등학생들의 수업 방식을 따라 자신의 업무 시간을 짠다. 이렇게 되자 하마터면 삶에서 그 중요한 가치가 사라질 뻔하였다.
미국인들은 시간표 짜기에 점점 비참해질 정도로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 내일 업무 일정을 미리 짜둘 뿐 아니라 다음 주 업무 일정까지 완벽히 정해둔다. 게다가 다음 달 업무 일정도 완벽하게 짜두며, 심지어는 삼 주 후의 미팅 일정까지도 사전에 잡아둔다. 너무 지나친 감이 없잖아 있다.
중국 사람이 친구의 초대장을 받았을 때에는 갈 건지 혹은 가지 않을 건지 답장해줄 필요가 없다. 초대 명부에 “도(到)”라고 적으면 갈 거라는 뜻이고, 가지 않으면 “사(謝)”라고 적는다. 그러면 그렇게 마무리된다. 하지만 다른 대다수의 초청받은 사람들은 바로 그 자리에서 “지(知)”라고 적는데, 이건 알겠지만 갈지 안 갈지는 확실치 않다는 뜻이다.
막 상해를 떠나려는 미국 사람이나 유럽 사람은 나에게 1938년 4월 19일 오후 세 시 정각에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서 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뒤, 5월 21일 아침 7시 기차를 타고 바로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으로 갈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것이다. 가령 우리가 어떤 사람을 오후에 사형에 처해야 한다면, 저렇게 일찍 집행 일자를 잡아둬야 할 필요가 있을까? 자기 삶의 주인공은 자기 자신이니 자기 취향 따라 여행하고 자기 생각 따라 오가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미국 사람들이 여유를 모르는 데에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는데, 이는 그들이 일을 너무나도 사랑하여 업무를 삶보다 우위에 두고, 삶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다들 세상의 모든 유명한 예술에는 그 이름값 하는 특징이 있기를 요구한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로 특징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특징이라는 이 기묘한 개념은 술의 발효와 같아서 바로 만들어져 나올 수 있는 게 아니다. 가만히 움직이지 않는 채로 꽤 긴 시간이 지나야만 한다.
중국과 미국의 남녀노소 모두가 일하고 싶어 하며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귀중한 자존심을 얻고, 후발 주자들의 존경심을 얻고자 하는 모습은 동양 사람들의 눈에 정말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사실 노인들이 일하는 건 마치 교회에 스피커를 달아서 재즈 음악을 틀어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어르신들이 한평생 일하셨는데도 아직 모자라다는 말인가? 어르신들이 영원히 일하실 수는 없지 않은가? 중년에 접어들어 쉬지 못하는 것만 해도 안타까운 일인데, 노년에도 한가한 세월을 보내지 못하고 편안한 삶을 누리지 못한다면 이건 정말 인간 본성의 죄악이다.
특징은 늘 오래된 사물, 그리고 시간을 통해 성장하는 사물과 밀접한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특징이 만들어지면서 생기는 표식들이 많은데, 사람이 중년에 접어들었을 때 얼굴에 생기는 아름다운 선들이 바로 이 표식들이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너나 할 것 없이 구식 자동차를 팔고 새 자동차로 바꾸는 그런 생활방식에서는 특징이라는 것을 발견하기 힘들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좋고 나쁨을 가리는 것은 우리가 만들어진 사물을 대할 때와 같이 시대에 따라 변한다. 1937년에 우리는 남녀 모두 1937년의 모습이었고, 내년이 되면 사람들은 모두 내년의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다. 옛 교회, 구식 가구, 오래전 출판된 사전과 옛날 책들. 우리는 오래된 것을 좋아한다. 나무랄 데 없는 것, 세상의 수많은 풍파를 겪어온 것만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나는 가끔 앞을 내다보는 환상에 빠져 천 년 후를 상상하게 될 때가 있다. 뉴욕 맨해튼의 주민들은 모두 성질이 느긋한 사람으로 변하고, 미국의 “진취적인 사람(Go-getter)”들은 다 동양 스타일의 여유로운 사람이 될 것이다. 미국의 신사들은 아마 모두 장포를 걸치고 슬리퍼를 신을 것이다. 두 손을 소매 속에 집어넣는 중국인들의 모습을 흉내 내지 못하겠으면 대신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끼워 넣고서는 브로드웨이를 팔자걸음으로 활보할 터이다. 사거리의 경찰은 팔자걸음을 걷는 사람에게 말을 붙이고, 차들이 빽빽한 도로에서는 운전자들이 서로 만나 인사를 하고 할머니의 안부를 물을 것이다. 다른 사람 가게 앞에서 양치질 하던 사람은 이웃과 재잘재잘 담소를 나누고, 가끔 자칭 학식이 풍부한 학자가 소매 속에 모서리가 구겨진 낡은 책을 밀어 넣고 비틀비틀 길을 걸어가기도 할 것이다. 식당의 카운터는 철거되고, 손님들 쉬라고 자동음식점 안에 나지막하지만 탄성 있는 안락의자가 늘어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오후 내내 카페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며 30분 동안 오렌지 주스 한 잔을 겨우 마실 것이다. 맥주도 더는 큰 컵으로 단숨에 들이키지 않고, 입술을 적시며 조금씩 마시고 맛을 음미하며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속의 무한한 즐거움을 체득할 것이다. 환자들의 수속 절차는 폐지되고, 응급병동 또한 없어져서 환자들은 의사와 함께 삶의 철학에 관해 토론할 수 있을 것이다. 소방차는 달팽이처럼 굼뜨게 변해 천천히 기어 다니고, 소방관들은 차에서 내려 하늘에 날아가는 기러기의 숫자 때문에 일어난 사람들의 말싸움을 감상할 것이다. 이렇게 행복한 시대는 안타깝게도 뉴욕 맨해튼에서는 이루어질 희망이 없다. 만일 실현될 수만 있다면 시민들은 여유가 넘치는 오후를 마음껏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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